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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6 06:28 , 박건우

개론은 노교수가 가르쳐야 한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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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론은 노교수가 가르쳐야 한다는 말

장성숙/ 극동상담심리연구원, 현실역동상담학회

blog.naver.com/changss0312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70대 중반의 분이 나와 담소를 나누던 중 이렇게 말했다.

  “심리학 개론은 노교수가 강의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네요. 대학교에 다닐 때 젊은 교수가 개론을 어찌나 어렵게 가르치던지 흥미를 다 잃었었지요.”

  철학과 출신인 그분이 얼마 전부터 진행하는 내 YouTube를 보고 내게 한 말이다. 내가 중요 개념을 실제 생활에 적용할 수 있게끔 쉬우면서도 재미있게 말해주더라고 하였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다 연륜 덕분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칭찬인 것 같아 나는 웃음 지으며 ‘그렇지, 전 분야를 망라하는 개론을 젊은 교수가 가르치기란 쉽지 않지!’ 하고 생각했다. 예전에 나도 일본에서는 개론을 노교수가 가르치고, 최첨단 연구에 대한 것은 젊은 교수가 가르친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포괄적인 내용을 닮은 개론을 젊은 교수나 시간강사들에게 맡기는 편이다. 그런 과목은 수강생들이 많아 출석 체크나 채점하기가 성가시고, 전공과목과 비교해 깊이가 덜 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세부적인 전문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체를 아우르거나 각각의 함의를 꿰뚫어 보는 안목이다.

  사실, 갓 박사학위를 딴 젊은 교수들은 자신의 특정 분야에 몰두하느라 인접 분야에 두루두루 관심을 두지 못하는 편이다. 그런데다가 젊은 혈기로 많은 것을 전달하고자 욕심을 부리는 까닭에 미처 기본 틀을 갖추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게 비단 개론을 강의하는 데에만 국한하겠는가. 거의 모든 일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가장 흔한 예로 결혼해 처음 아이를 키우는 젊은 어머니들은 자식을 잘 키우겠다는 의욕으로 도리어 그 반대의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그러다가 둘째나 셋째를 키울 때는 시행착오를 겪은 탓에 확실히 전보다는 여유를 부린다.

  이러한 것들을 지켜보면서 성과의 저해 요인은 부족함이라기보다 과욕이지 않을까 한다. 노력도 적정수준을 넘어서면 도리어 해가 되고 마는 이치다. 그러니까 그 70대분이 심리학 개론을 들으면서 정작 중요한 흥미를 잃었던 것도 젊은 교수가 욕심을 부렸던 때문이었지 하는 것이다.

  저해 요인 하나를 더 추가하자면, 완급에 대한 조절 능력이라고 본다. 여러 가지 여건이 받쳐주면 꼼꼼하게 작업해도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핵심이나 간략히 다루어야 한다. 그래야 전체를 아우르지, 자칫하다가는 용두사미가 되고 만다.

 

  교수로 재직하면서 정신분석을 강의했는데, Freud가 평생에 걸쳐 자신의 이론을 계속 수정하는 바람에 그 내용이 복잡했다. 그러한 것을 일일이 다 설명했다가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나 역시 지루할 게 뻔했다. 그리하여 구조이론에 해당하는 본능, 자아, 초자아가 어떻게 협동하며 발달하는지나 역점을 두며 지엽적인 것은 과감히 쳐냈다. 그랬더니 한결 명료했고 수강생들도 재미있어했다.

  불교를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방대하기 그지없는 내용이었지만, 골격에 해당하는 사성제(고성제,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을 먼저 이해하고자 했다. 그러면서 도성제를 풀어놓은 팔정도를 중심으로 주요 개념을 하나씩 더해가니 그리 어렵지 않았다. 고해인 세상을 극복하려면 석가모니가 발견한 팔정도를 닦으라는 게 불교였다.

 

  어느덧 이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그릇만큼 이해하지, 상대가 많이 준다고 하여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욕심부린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전에는 상담하면서 어떻게든 내담자를 좀 더 빨리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려고 직면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좀처럼 변화하지 않는 게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그렇다면 변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내 역할은 뭐지?’ 하는 의문이나 회의를 감출 수 없었다.

  그러던 중 개론은 연륜이 쌓인 노교수가 강의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아, 맞아!’ 하는 심정이다. 젊은 교수의 과욕이 수강생의 흥미를 잃게 했듯이, 상담자는 다른 무엇보다 변화에 대한 내담자의 의지나 동기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다고 마냥 늘어지게 상담하면서 시간이나 노력을 낭비하는 일은 삼가야겠지만.

  그러고 보면 나이 들어간다는 점에 미묘한 게 많다. 신체적으로는 쇠퇴해가지만, 그 대신 연륜의 무게는 늘어나니 말이다. 그래서 젊으면 젊은 대로, 늙으면 늙은 대로 있는 그대로를 음미하며 살아야 하는 거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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